김동호의 스타트업 이야기

한국신용데이터, 아이디인큐, 그리고 기업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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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인큐 두 번째 장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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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운 좋은 위치에 있었다. 기실 대표라는 역할은 무대 위에서 조명받는 배우와 같아서, 하는 일에 비해 가장 많은 이목을 받게 되는 까닭이다.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을 때야 몰라도, 기십 명의 구성원과 함께하면 그들이 대부분의 일을 멋지게 해냄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팀으로 성취한 많은 것이 알려진 개인의 공으로 오해되곤 한다.

내게 있어 지난 5년의 가장 값진 보상은 동료들과 헤쳐온 여정 그 자체다. 용산 한 켠에서 먹고 자며 서비스를 개시한 2011년, 처음으로 고객을 만나고 첫 번째 기관투자를 유치했던 2012년, 일본 소프트뱅크 본사에서 손정의 회장과 조우하며 결기를 다잡았던 2013년, 성장 가도에서 34억 원 규모의 Series B 투자를 받아 제품개발팀을 크게 확장한 2014년, 이어 리더쉽 팀을 훌륭하게 재구성하며 서비스 4주년을 맞은 2015년에 이르기까지 – 굽이굽이마다 시행착오와 깨달음이 얼마나 많았던가. 

회사의 첫 번째 장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시작 그 자체, 최소기능제품의 개발과 출시, 제품과 시장의 어울림을 찾기 위한 좌충우돌, 그리고 두 번째 장을 열어갈 조직과 재정을 준비한 것까지일 테다. 일련의 과정을 지나 아이디인큐는 스타트업(start-up)의 국면을 넘어 스케일업(scale-up)의 장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달 말, 나는 뿌듯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정말 훌륭한 대표를 새로이 모시게 됐다.

황희영 신임 대표와 처음 만난 건 2013년 여름이다. 맥킨지 서울 사무소에 재직하던 당시 한국쓰리엠 손병익 부장께 서비스 소개를 받았다며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어떤 고객보다도 모바일 리서치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서, 제품을 만든 우리조차 가늠하지 못하던 활용법을 먼저 제안하시곤 했다. 우리 클라이언트 데이에 초청 연사로 발표한 적도 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니다.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후에는 부사장으로서 회사의 제품과 전략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황희영 신임 대표(左)가 오픈서베이 클라이언트 데이에 초청 연사로 왔을 때 나와 한 프레임에 담긴 사진

황희영 신임 대표가 초청 연사로 왔던 클라이언트 데이에서

리서치 방법론과 소비자 인사이트에 대한 깊고 방대한 경험을 기반으로, 오픈서베이가 리서치 산업을 혁신해 나갈 청사진을 누구보다 상세하게 그려내는 분이기에. 황희영 전 부사장이 새롭게 대표를 맡아준 건 회사에 있어 대단한 행운임을 확신한다. 이후 우리는 모바일 리서치를 넘어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제품개발·마케팅·CRM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소비자 분석회사로 도약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아이디인큐를 설립하고 경영을 맡아왔던 내 소임은 마무리됐다. 

더 잘할 수 있던 순간들이 아른거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테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처음이라 서툴렀음에도 나를 믿어준 팀원들에 대한 고마운 만큼은 아니리라. 서운한 기억을 가진 채 지나쳐간 분들에 진 마음의 빚도 오랜 기간 갚아나가야 할 일이다. 한편, 사업의 오르내림 속에서도 사람과 제품에 장기적인 관점으로 투자할 수 있던 건 우리의 꿈을 믿어준 투자자들 덕분이었다. 이 모든 분의 도움으로 미약했던 시작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Written by Kelvin Dongho Kim

2016/01/25 at 11:59

첫 번째 연례서신에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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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워렌버핏의 연례서신이 수많은 미디어에 보도될 정도로,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형식적인 재무요약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전 아이디인큐의 두 번째 주주총회를 진행하면서 이걸 한 번 제대로 써보기로 결심했다. 아직 공개기업은 아니지만 소프트뱅크와 스톤브릿지캐피탈의 투자를 받고나서 첫 번째 결산이기도 했고,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를 향할지 주기적으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 일부를 공유한다.

하지만 지난해와 같은 성과는, 우리가 꾸준하게 잘해낸다면, 아이디인큐와 리서치 산업에 있어서 1% 지점에도 미치지 못할겁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스마트폰을 쓰고있는 오늘날, 모바일 리서치는 고객들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대폭 절감시켜줍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지속적인 기술고도화는, 시장에 대한 보다 완벽한 이해를 고객들에게 제공할겁니다.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비용효과성은, 조사가 필요했지만 재정적 부담으로 인해 시행할 수 없었던 기업들에게 유일한 대안이 됨으로써 신규시장을 만들어나갈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오픈서베이를 산업전반에 있어서 지속가능하며 견고한 신뢰를 받는 브랜드로 만드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오픈서베이의 미래는 모바일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이름에 모바일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들에게 완전한 형태의 소비자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관점을 통합적으로 제시해야하기 때문이다. 오픈서베이는 이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시장조사 플랫폼이지만, 소비자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방법들이 지속적으로 추가되어야만한다. 따라서 아이디인큐는 시대에 변화에 맞춰 ‘가장 진화된 형태의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제공하는걸 목표로 한다.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주주가치 극대화가 성공의 기준이라고 믿습니다. 이는 오픈서베이가 현재의 시장 영향력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으며, 여기서 말하는 시장 영향력이란 행복한 고객들, 신뢰받는 브랜드, 높은 매출과 수익성을 통칭합니다. 리서치 산업에 있어서 아이디인큐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극대화될것이며, 이는 투자자본에 대한 수익상승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내리는 모든 의사결정들은 장기적 관점에 초점이 맞추어져왔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물론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되 단기적인 현금흐름과 선투자의 균형이 전제되야 한다. 무한한 시간과 돈이 있다면 이상적인 회사와 사업모델을 누구나 만들 수 있겠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업을 하고있는거지 연구재단을 운영하고 있는게 아닌 까닭이다. 매 순간 최선의 제품을 만들고, 그 순간 그걸 인정해주는 고객을 끊임없이 찾아내야한다. 내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무작정 도자기를 깨어버린다면 이 곳에 맞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걸 그대로 내보낼 순 없다. 결국 균형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치열하게 달려온 유능한 구성원들 덕분이며, 저는 이렇게 훌륭한 팀원들과 일하고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러한 수준의 인재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이디인큐는 채용기준을 단 한차례도 낮춘적이 없으며, 이는 1000여명에 달하는 누적지원자들 중에서 30명에 불과한 사람들을 선발했다는 사실이 방증합니다. 당연히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과 모으고 또 한 팀으로 일하게 만든다는건 절대 쉬운일이 아닙니다. 가장 진화된 형태의 리서치 솔루션으로 고객들의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돕겠다는 비전에 헌신하는 인재들을, 이정도로 많이 모을 수 있었다는것 자체가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초 일주일동안 진행한 공개채용에 500명 넘게 몰렸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시간이 적지않게 흘렀다. 그 과정에서 나는 대표역할을 잘 수행했나, 그리고 약속들을 지켜왔나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어떠한 창업자에게도 좋은 대표역할을 지속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야후의 제리 양이나 블랙베리의 마이클 라자리디스조차도 결국은 수성에 실패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헨리 포드, 에스티 로더,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앞으로도 쉼없이 도전하고 그 너머를 제시하는 비저너리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Written by Kelvin Dongho Kim

2013/04/04 at 18:53

골드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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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터넷 사용자가 600만명이던 1999년, 골드뱅크에는 200만 가입자가 있었다. 인터넷 사용자 셋 중 한명이니 지금으로 치면 애니팡급이다. 7급 공무원이었던 김진호 대표는 회사를 창업한지 1년 반만인 1998년 10월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했고, 얼마되지 않아 시가총액은 3천억을 넘어섰다. 코스닥 진입전에는 인터넷 주식공모로 9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흥미로운건 주식공개 이후 골드뱅크의 행보가 일본 소프트뱅크와 유사했다는 것. 김대표도 공개적으로 말한적이 있는데, 다양한 금융기법으로 자금을 조달해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노렸다. 실제로 연매출이 100억에 불과하던 1999년, 이 회사는 유상증자, 전환사채발행, 해외투자유치 등을 통해 1000억을 조달하고는, 심지어 타이어회사에도 투자했다. 결국 적대적 인수합병에 휘말리다가 지난 2009년 상장폐지됐는데.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리워드 모델은 사용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골드뱅크가 그러했듯 스마트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던 작년부터 모바일 광고사업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서비스 시작 이후를 보자. 김대표는 광고 클릭수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광고주들은 실질적인 매출증대를 원했다. 말하자면 이 회사는 클릭당과금(Cost Per Click)을 제시했지만 광고주들은 행동당과금(Cost Per Action)을 원한거다. 광고효과에 의문을 가진 기업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당시에는 회원수 확보라는게 하나의 사업모델이었다. 사실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러하다. 매출이 없어도 회원이 많으면 결국엔 돈이 된다고들 생각한다.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하지만 장미빛 전망이던 한국벤처들은 추락하기 시작했고, 테헤란밸리는 신기루처럼 증발하지 않았던가. Chris Dixon 도 수익모델을 검증하지 못한 소비자 서비스들은 어려워질거라고 예측했다. 멋부릴때가 아니란 말이다.

+ 소프트뱅크도 비슷한 시기에 주가가 100분의 1로 줄어들며 여려움을 겪었지만 반등에 성공했다. 차이는 무얼까?

유튜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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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유튜브 이야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창업자 스티브 첸이 직접 쓴 책인데, 전문작가가 아니다보니 전개가 좀 거칠었지만, 진정성이 담긴 내용들이 인상깊었다. 읽으면서 아이디인큐와 비슷하다고 느낀 부분이 적지 않았다.

페이팔은 직원을 뽑을 때에도 독특한 면이 있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 즉 ‘같은 유형’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그래야 평등하고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더 잘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티엘은 스탠퍼드 출신이나 1987년에 공동창업한 스탠퍼드 리뷰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중용했고, 레브친은 일리노이대학의 후배들을 대거 기용했다.

올 초 머니투데이에 소개되었던 것처럼 아이디인큐는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동기들이 함께 시작한 회사다. 현재도 그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인데, 현재 서울 오피스에서 함께하고 있는 서른 명 중 여섯 명이 한국과학영재학교 선후배들인 까닭이다. 대학교를 포함하면 사실상 대부분이 함께 학교를 다녔거나, 동문들의 친한 친구로 구성되어 있다.

2005년 초, 페이팔의 동료였던 케이스 라보이스가 내게 창립한 지 얼마 안 된 소셜 네트워크 회사에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페이스북은 상호연동적인 소셜채널이었는데 절묘한 아이디어의 산물이었다. 반면에 그들이 짠 코드는 페이스북 이펙트라는 책에도 나왔듯이 그렇게 높은 수준이 아니었고 사용자의 데이터 보안 면에서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페이팔 출신의 엔지니어인 나는 보안 문제에 상당히 민감했다. 그래서 그것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페이스북 이펙트에서 소개된 것처럼 스티브는 초창기 페이스북에 합류할 뻔한 기회가 있었다고. 그러다보니 페이스북을 가지 않은게 후회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단다. 그의 일관된 답변은 그렇지 않다는 것. 나의 경우도 작년 여름 병역특례를 마치고 벤처산업에 뛰어든다고 결심했을 때, 이미 투자를 받은 벤처에서 일하길 제안받은적 있다. 지금 느낌이 어떠냐고? 말할것도 없이 제로 베이스로 시작했던 선택이 자랑스럽다.

2007년 중국계 엘리트 모임인 백인회 인터뷰에서 나는 유튜브의 탄생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3가지 행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2005년부터 브로드밴드 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슷한 시기에 보급된 플래시 기술입니다. 당시 97%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었죠. 마지막 행운은 동영상 촬영 설비와 기술의 보급입니다.” 모든 창업의 성공은 행운이라는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 행운을 잡았느냐 못 잡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일을 했느냐‘가 핵심이다.

사회변화로 생겨나는 기회들을 강조한건 많은 벤처 선배들의 조언과 겹친다.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도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할 때, ‘실험플라스크 안의 세균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사용자’라는 행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한적 있다. 결국 열심히 하는건 기본이고, 정말 좋은 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크게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친구 사귀기나 데이트 같은 키워드를 선택한 것은 당시 그런류의 사이트가 널리 유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핵심 사용자들인 남자 대학생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많은 시간을 들여 동영상을 촬영해야 했고 또다시 사람들의 점수를 기다려야 했다. 한마디로 복잡하고 재미가 없았다. 우리는 친구 사귀기나 데이트같은 키워드가 유튜브에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와 평가 사이트 옐프는 모두 페이팔 시절에 좋은 교훈 – 첫 번째 아이디어가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 을 얻었다. 옐프는 현재의 모습인 평가 사이트로 성공하기 전에 이메일 회람 서비스를 제공했고, 유튜브는 동영상을 이용한 데이트 사이트에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의 정신적 중심에 섰다.

첫 번째 아이디어가 가장 좋은게 아니라는 말은 아이디인큐에 있어서도 가장 큰 교훈이었다. 작년 여름만해도 동시에 세 개 이상의 사업모델을 동시에 준비하던 상황이었고,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걸 체감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유행하고 있는 키워드를 갖다붙인다고 해도 결국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도 깊이 공감했다. 그 외에도 스티브가 구글 CEO 에릭 슈미트를 만나 회사 매각을 결정하고, 또 공식적으로 그 사실을 발표하기까지 총 5일이 걸렸다는것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했던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가 일주일만에 진행되었다는것이 화제였는데, 사실 구글과 유튜브의 합병이 그것 이상이었던 셈이다.

스티브 첸은 작년 봄 구글을 퇴사했고, 유튜브를 공동창업했던 채드 헐리와 함께 AVOS System 을 설립했다. (2012)

+ 스티브 첸은 얼마 전 AVOS System 을 퇴사해 Google Ventures 에 EIR (Entrepreneur in Residence) 로 합류했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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