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도전의 기록’ Category
때로는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몇일 전 지디넷 전하나 기자님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아이디인큐의 성장동력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딱히 대답을 준비하고 있던 질문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운이 좋았다’는 말이 불쑥 나왔다. 물론 노력도 했다. 여느 스타트업처럼 못먹고 못자고 (하지만 즐겁던) 시간들이 짧지 않았다. 용산 한켠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열 명도 넘게 등 부딯쳐가며 일하다가 좀 더 넓은 사무실로 옮긴게 불과 3개월 전이다. 그런 노력들이 성장동력의 전부 혹은 대부분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작을 하는 순간부터, 구성원들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모으고, 좋은 분들을 지속적으로 모셔오는 과정 속에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지금 개발조직을 리드하는 L의 경우를 보자. 작년 봄 포스코에서 진행됐던 소프트뱅크벤처스 임지훈 심사역님의 스타트업 관련세션에서 만났는데. 앞뒤로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커피를 마시며 자정넘게 이야기를 이어갔고, 바로 다음날부터 합류했다! 엔젤투자의 경우 (지난번 글에 썼던 것처럼) 생각치 못한 시기에 생각치 못했던 방향으로 물꼬가 트였던게 사실이다. 이런 긍정적인 우연들의 연속은 운이 좋았다는 말로 쉽게 정리될 수 있다. 보다 정확히는 구성원들의 운에 기댄 것이 맞다.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회사성장을 출중한 리더 한명의 역량으로 해석하는 얘기들에는 쉬이 동의하기 어렵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식은 땀이 흘렀다. 지금까지 성장해온 과정이 우리의 노력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게 아니라.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에 기댄 부분이 많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타이밍이 틀리면 엇나가겠다 싶더라.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나는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날수도 있단 얘기다.
그렇다면 운이 좋길 기대하는 것밖에 할 게 없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운이란게 노력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뿐이지 관련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이 외부환경과 잘 맞아떨어질 때 긍정적인 우연이 발생하는데, 이걸 해프닝으로 지나칠지 혹은 회사의 모멘텀으로 소화할지 판가름하는게 간절함의 정도다. 여기서 말하는 간절함이란 어느 한 명이 단순히 일을 더 많이 하는걸 말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 구성원 한명 한명과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위해 시간투자를 아끼지 않는 류의 노력도 포함되는거다.
중요한 건 이 간절함을 유지하는 방법이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우연에 기댈 수는 없을테니까.
This Journey 1% Finished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에 공개한 The Road We’ve Traveled 영상이 연일 화제다. 그가 취임하던 2008년 겨울이 미국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웠는지, 취임 이후 사회 전분야에 걸친 다양한 도전들을 얼마나 잘 해결해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자료다. 이 영상을 보며 이제 막 1년이 지난 우리회사 (아이디인큐) 가 걸어온 길들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은 지난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시작할 때를 생각해보면 반은 치기어린 어린 도전정신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벤처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라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을법한 상황이었고, 그런 이야기를 한지 몇시간만에 “그래 해보자” 라고 빨리 행동에 옮긴 것이 일반적인 상황과 조금 달랐던 부분이다. 그렇게 회사가 만들어졌다.
시작하고 한동안 시행착오들이 많았다. 하고 싶던 아이디어들은 많았고 하나에 뾰족히 집중해서 승부를 봐야한다는 교훈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한 때 세가지 사업모델을 동시에 진행하려 애쓰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일이다. 여느 벤처선배님들이 강조하던 선택과 집중 (여러가지를 시도한다고 해도 한번에는 한개에만 집중) 에 대한 시행착오는 겪지 않는게 가장 좋았을텐데. 다행인건 이런 시행착오들을 빠르게, 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겪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무실은 용산 전자상가 뒷편에 복층형 오피스텔이었다. 고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시작해서 기숙사 분위기가 많이 났다. 주말이면 파트타임으로 힘을 모으던 친구들도 와서 같이 먹고, 일하고, 마시고, 잤다. 이 때를 생각하면 정말 한달 뒤가 보이지 않는 막연한 불안 속에서 ‘잘될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사무실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우리가 만든 서비스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쓸 수 밖에 없어라고 생각한다던지, 그런 것 말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6개월에 걸쳐 우리는 크게는 세가지 사업모델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개발해왔다. 첫 번째 아이템은 위치기반 사업모델이었는데 1달도 안되는 기간동안 앱을 개발해 런칭해 추이를 보다가 결과적으로는 여러가지 이유들로 접기로 했고. 두 번째 아이템은 거진 5개월에 걸쳐 웹사이트와 앱을 모두 개발했던 커머스 관련 모델이었다. 마지막 아이템은 지금 아이디인큐가 주력하고 있는 모바일 앱 기반의 설문조사 서비스였다.
두 번째 아이템과 세 번째 아이템의 개발이 병렬적으로 진행되면서 여러가지 이슈들이 생겼었는데, 크게는 팀워크와 리소스 이슈였다. 팀워크의 경우, 서로 다른 사업모델을 한 회사 내에서 개발하다보니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느낌 (혹은 공동체의식)이 약해졌던 일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시만해도 ‘우린 진짜 좋은팀이니까’ 둘 다 할 수 있을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
개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뎠다.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 작업분량은 훨씬 많았고, 안 그래도 적은 자원을 잘 활용해야하는 벤처입장에선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한 가지 아이템을 선택해 그것에 집중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는데. 깊이 있는 논의 끝에, 우리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아이템을 하나만 고르자면 ‘모바일 설문조사’였다는 결론이 난게 작년 8월의 일이다. 여담이지만, 두 번째 아이템의 경우 아직까지도 우리 개발서버 안에 코드가 잘 보관되어 있는데 지금도 다운받아서 컴파일하면 잘 돌아간다 ㅎㅎ
그러던 와중에 정말로 우연히 엔젤투자 제안을 받았다. 아이디인큐의 공동창업자 중 한명인 성호가 티켓몬스터의 공동창업자 중 한명인 기현이형과 만난게 시작이었다. 벤처에 합류하기 전에 공인회계사였던 성호는 이 쪽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고, 기현이형을 만나러갈 때만해도 내게 전화해서는 “괜찮은 형인데 티켓몬스터에서 일하나봐~ 얘기해보고 같이할 수 있는지 설득해볼게” 라고 했었다. 몇 시간 후, 알고보니 그 회사를 ‘공동창업’했던 사람이었다고 깜짝 놀란 목소리로 전화가 왔던 기억이 난다. (이 에피소드는 올 초에 머니투데이에 기사화된 바 있다.)
사실 전화를 받았을 때만해도 해프닝으로 끝날줄 알았는데. 기현이형이 티켓몬스터의 또 다른 공동창업자이자 대표였던 현성이형과 얘기를 하다가 ,아이디인큐 팀구성과 사업모델이 흥미롭다며 한 번 만나서 엔젤투자 논의를 해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물꼬가 트인 투자논의는 급진전되었고,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집행되는것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조건으로 엔젤투자를 받았다.
오랜 시행착오들로 조금은 지쳐있던 시점이다보니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우리가 만들어가는 방향에 대한 외부의 긍정적인 평가”라는 측면에서 함께하는 구성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또한 티켓몬스터라는 성공적인 벤처회사를 시작하고 만들어가는 현성이형과 기현이형으로부터의 조언들은 정말이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도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벤처 선배다 보니 다른 어떤 조언들보다 와닿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그렇게 오픈서베이의 웹과 앱을 런칭한게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개월 전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런칭하던 월요일 (2011년 12월 19일) 정오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 사망보도가 이어졌고 우리 보도자료가 거의 다 묻히게 됐던 상황인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순 없다고 생각을 하고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관련된 인식조사’ 를 급히 진행했다. 우리의 가설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의견들이 수집되었고 이는 기존 온라인 설문조사들에 비해서 10배가 아니라 100배 넘게 빨랐다.
지난 세 달 동안 앱은 열 번도 넘게 업데이트가 됐고, 웹은 서른 번도 넘게 개선이 됐다. 지금은 SBS 와 조선일보 등 주요 미디어들이 오픈서베이를 이용해 원하는 지역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주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은 오픈서베이를 이용해 원하는 성향의 사람들에게 서비스개발 및 개선에 필요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오픈서베이라는 사업모델은 혁신적인 속도와 비용이라는 점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기존 리서치서비스는 보통 천만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서 몇 주에 걸친 시간이 지나고야 결과가 제공됐다. 극소수의 대기업들만 쓸 수 있는 가격이었다는 점인 차치하고서라도, 최소 2-3주가 소요된다는 점은 빠른 의사결정을 요하는 지금에 있어서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고객들에게는 수천배 더 빠른 결과제공으로 인해 ‘시간비용’을 줄여주고 있으며, 열배 이상 저렴한 비용들로 인해 ‘설문조사를 하고싶지만 비싸서 할 수 없었던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에게 합리적인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더 많은 기업들이 오픈서베이를 통해 수집한 정보들을 기반으로 더 나은 판단을 내리고 있고, 더 나은 판단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는다.
이 포스트를 쓰고 있던 와중에 언론을 통해 국내 유수의 벤처캐피탈이 아이디인큐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긴 포스트다보니 글을 쓰기 시작하고 마무리하기까지 몇 일이 걸렸다 ^^;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 향 비행기 탑승을 30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의 와해적 혁신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도를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하려 한다. 이미 지난 2월부터 실험을 위한 밑작업들을 진행해왔고,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사람들의 아이디인큐의 도전에 뜻을 같이해주어 함께 움직이고 있다. 한동안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유쾌한 도전들을 계속할 생각이다.
오픈서베이를 통해 고객들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의 여정만큼이나 더 신나고 즐거울 앞으로의 모험들이 기다려진다. 아이디인큐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It’s the awl, stupid
지난 주말내내 내가 follow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만 최소한 수십명이 한마디씩 덧붙인 Marc Andrees 의 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 를 읽어보고 든 생각을 느즈막히 풀어본다.
십수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접근성이다. 정규교육과정을 배운 한국인이라면 산업을 1차/2차/3차로 분류하고 선진국일수록 3차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다는 부분에 밑줄친 기억이 날거다. 닷컴버블이 시작될 90년대 중반 인터넷접속자는 5천만명이었지만, 지금은 유선인터넷 20억 명, 모바일인터넷 50억 명 시대가 되었다. 제품을 개발하면 그것이 노출되는 모수가 100배나 뛰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3차 산업의 비중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비중이 더 의미있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가장 비용효과적으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도구로써 소프트웨어가 급부상한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높아진 접근성은, 소비자들이 그저 그런 제품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90년대에 암암리에 유통되어 매우 적은 사람들 (소위 매니아) 에게만 노출되던 일본음악같은 것들은 대중들이 너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되어버렸다. Zard 음악 하나 들으려면 향레코드 가서 기웃거려야 했지만, 지금은 Youtube 에서 검색한번에 6,610 개의 공연영상을 볼 수 있게됐다. 이래서 그저 그렇지만 나름 괜찮았던 대부분의 제품들은 외면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싸이월드를 그만두고 페이스북에 옮겨온 (혹은 아직은 병행하는) 한국인들이 500만 명이다. 10년에 걸쳐 쌓아올린 1800만 회원 3명 중 1명이 해외에서 개발된 더 좋은 제품으로 갈아탔다. 사용자 잠금효과가 큰 SNS 인데도 이모양이다. Reeder for iOS 가 이미 미친듯이 멋진 UX 를 제공하고 있는데 RSS Reader for iOS 를 만드는 일은 (조금 과장하자면) Facebook 을 대체할 SNS 를 꿈꾸는 것과 같다. 하지 말란 말이 아니라, 내가 하기 싫다는 말이다. 난 로또가 아니라 승산있는 판을 신중히 골라 들어가고 싶은 까닭이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을 성공시키려면 좁히고 좁힌 극소수의 고객들에게 와우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기업이 아닌이상 리소스는 매우 제한적이라 100의 메시지를 100명에게 전달하는 것보다는 100의 메시지를 10명에게 소리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수천 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있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사용자 마음에 송곳 (awl) 처럼 파고들어 와우경험을 줄 수 있는 소수 정예팀 (A-Team) 이 필요하다. 이걸 아는 회사는 아무나 뽑지 않는다. 적당히 괜찮은 엔지니어 혹은 사업개발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120% 먹히는 사람만 함께 하려고 한다. 한끗이라도 녹슨 송곳은 말끔히 구멍을 뚫지 못한다. 흙탕물에 뒹굴며 흰옷에 얼룩지지 않길 바라는건 요행을 노리는 것과 같다.
사실 바로 위의 문단은 나의 가설이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 신념이기도 하다. 그저 격류에 휩쓸려 떨어지진 않은 것만으로 배에 힘주며 감놔라 배놔라 하고싶지 않다. 그래서 직접 가설을 증명하는 실험을 시작한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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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사용하던 티스토리 블로그에 작년 8월에 올린 글이다. 아이디인큐에 풀타임으로 조인하며 적었던 의미있는 글이라 중복이지만 다시 한 번 포스팅해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