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역사의 교훈’ Category
Atlassian 스콧 파쿠아 공동창업자 이야기
얼마 전 Atlassian을 공동 창업한 Scott Farquhar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에게는 표준과도 같은 Jira와 Confluence를 개발한 회사로, 호주 기술기업으로는 처음 유니콘이 되었고 현재 미국 Nasdaq에 약 30조 원의 기업가치로 상장되어 있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며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메모로 남겨둔다.
“Make about 10 great decisions in a year. That’s all that matters.”
CEO가 1년에 내리는 진짜 중요한 결정은 10개 남짓이라는 것. 그런데 정작 그 10번의 순간에 피로와 잡음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호주에서 가장 큰 기술기업을 20년 동안 이끈 사람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 ‘건강을 챙기라’였다는 게 의외였지만.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도 않고 나아가는 일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체력이란 것에 깊이 공감한다.
“The internet’s here. We can probably sell online and distribute online.”
2000년대 초반, B2B 소프트웨어는 골프장에서 팔렸다. 수십만 달러짜리 계약, 수개월짜리 POC, 대규모 영업팀. Atlassian은 그런 업계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영업 조직 없이 온라인으로 팔 수 있다면, 고객은 대기업만일 필요가 없다. 중소기업과 소기업까지 열린다. 그때는 틀려도 지금은 맞을 수 있다는 것. 되는 이유에 집중하는 것이 성과의 충분조건은 아니어도 필요조건이라는, 편견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성취가 허락된다는, 내가 오래전부터 믿어온 것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이야기였다.
“It breaks at 50, 100, 300, 800, 1,500.”
조직이 50명, 100명, 300명, 800명 구간을 넘어 커질 때마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한 번씩 무너진다는 것이다. 800명을 넘어서면 내부 커뮤니케이션 전담팀 없이는 CEO의 머릿속 이야기가 조직 끝단까지 닿지 않는다. 사람을 한두 명 더 뽑는 문제가 아니라, 정보 흐름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The bottleneck is always at the top of the bottle.”
리더십 자체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일이 된다. 한동안 그는 모든 사람과 1:1로 만났다고 한다. 사람들의 시간을 뺏지 않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어느 시점에 그 방식이 오히려 자신을 병목으로 만든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전환한 방식은 1:다수였다. 다섯 명을 한자리에 모아 한 시간을 이야기하면, 각자에게 직접 관련된 건 10분뿐일지 몰라도 나머지 50분의 맥락이 그들의 판단력을 키운다는 것. 개인적으로 direct report와의 주간 1:1 체크인은 필수라고 생각하지만, 공통된 맥락을 공유할 때는 한 자리에 여러 명을 모아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What’s your data flywheel, and how does it get better over time?”
AI 시대의 해자는 어디서 오는가 .과거에는 프로세스와 규칙을 먼저 정의하고 거기에 맞춰 시스템을 지었지만, 이제는 원하는 결과를 지정하고 수천만 개의 데이터로 학습시킨다. 이 전환에서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진짜 경쟁력은 모델이 아니라 데이터 – 그중에서도 매일 스스로 좋아지는 데이터다. Tesla가 그가 꺼낸 예시였다. 수백만 대가 매일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이 자율주행을 개선하고, 개선된 제품이 더 팔리면서 데이터가 더 쌓인다. 경쟁자가 같은 모델을 써도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다. 모든 기업에게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가 가진 고유 데이터는 무엇이고, 그것은 오늘 어제보다 좋아지고 있는가.
“When you’re small, you make mistakes of commission. When you’re older, mistakes of omission.”
커리어의 가장 큰 실패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작은 회사일 때의 실수는 ‘한 일’에서 나오고, 큰 회사일 때의 실수는 ‘하지 않은 일’에서 나온다는 것. 구체적으로 그는 Slack을 꼽았다. Atlassian은 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일찍 진입했고, 제품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팀을 6명에서 20명으로만 늘렸다. 과감하게 50명, 100명으로 리소스를 배정했어야 했다. 그 사이 잘 자금을 조달한 Slack이 시장을 가져갔다. 회사가 성장했다는 것은 핵심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베팅이 보수적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의도적으로 베팅을 늘려야할 때도 분명히 있다는 것.
“Hire the management team, set the strategy, set the culture, and capital allocation.”
CEO가 해야하는 네 가지 일 중에서 인재영입, 전략, 그리고 문화는시간이 지나면서 구조화되고 시스템으로 덜어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 자본 배분은 끝까지 CEO가 쥐고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 제일 처음 이야기한 ‘1년에 10번의 중요한 결정’은 결국 ‘어디에 얼마를 걸 것인가’에 관한 자원배분 결정이다. 올해 내가 내린 10개의 중요한 결정은 무엇인가.
Scott Farquhar는 창업 후 24년 동안 맡았던 Atlassian의 CEO 역할을 지난 2024년 사임, 현재는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Skip Capital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칼라일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회장 이야기 @ 세계경제포럼 뉴욕 오피스
지난주 뉴욕에서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 창업자를 만났다. 데이비드는 많은 창업가와 투자자와의 대담 시리즈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세계경제포럼에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어서 직접 뵐 수 있었다. 칼라일은 1987년 설립되어 현재 약 500조 원($382B)의 자산을 운용하는 사모펀드로, 경제 수도(뉴욕)에 뿌리를 둔 블랙스톤과 KKR과 다르게 정치 수도(워싱턴 DC)에 본사를 두고 있다.

정치 경제를 포함해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나눴지만, 외부에 공유하기 어려운 내용은 제외하고, 성공적인 창업가에 대한 관점과 칼라일 창업 초기에 대한 이야기만 따로 메모해 둔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이 생각하는 비즈니스에 있어 가장 큰 실수와 그것을 해결한 방법에 대해 질문을 했었고, 상장 이후 회사에 있던 여러 일화로 답변해 주셨지만, 맥락상 여기에 옮기진 않는다.)
- 어떤 회사가 잘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버드 재학 중이던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대해 설명했을 때 그것은 성공하지 못할 것(that would never get anywhere)이라고, 제프 베조스에게는 그것도 안 될 것이라고(don’t think his company would make it) 이야기하기도, 넷스케이프가 아무런 비즈니스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는 우리는 그런 투자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we’re too sophisticated for that)고 이야기하며 거절했습니다.
- 유념해야 할 것은 훌륭한 벤처 캐피탈도 10개 중의 9개의 실패는 사실상 실패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투자를 해야 할까요? 성공적인 창업가는 결국 추진력 있는 CEO(a driven CEO)이면서도, 무엇을 모르는지 잘 모르는 사람(people who didn’t know how little they didn’t know)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창업자 중에 20대 혹은 30대가 많은 이유는, 그들이 뭘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they don’t know very much and therefore they don’t know they can’t do this)입니다.
- (데이비드 본인처럼) 70대가 되면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70대가 창업한 회사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솔직히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제가 투자하고 싶은 경우는 추진력이 강하면서, 약간 미친 것 같으면서도 ‘합리적인 대화를 못 할 정도로 너무 미치지는 않은’ 창업자(a little bit crazy but not so much crazy that he or she can’t have a reasonable conversation.)가 있는 때입니다.
- 이런 추진력 있는 CEO는 나쁜 비즈니스 모델이나 나쁜 사업 계획서를 (결국은) 극복해내고는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회사가 성공적으로 자리잡는 시점에 회사가 시작될 때 있던 사람들이 종종 자리에 없다는 사실입니다.(the guys at the beginning very often don’t show up when the company is that successful.) 마이크로소프트의 폴앨런도 그렇고, 애플의 스티브잡스(물론 나중에 다시 복귀했지만, 12년이나 회사를 떠나 있었습니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지속해서 노력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아니오’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런 과정에서는 때로는 불편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불편한 사람이 위대한 회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장 사교적이고 쾌활한 사람이 위대한 새 회사를 만들 가능성이 더 낮을 겁니다. (Not every obnoxious person is actually going to build a great company, but generally the person with the greatest social niceties and the person who’s the most pleasant person probably is not going to build the greatest new company.)
- (데이비드 본인이) 칼라일을 창업했을 때에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면 (칼라일을) 절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모펀드 대부분이 뉴욕에서 시작한 것과 다르게 칼라일을 워싱턴 DC에서 창업한 이유는, 투자은행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뉴욕에서 창업을 시도할 신용도 없었지만, ‘도시에서 쫓겨날 때, 앞장서서 행진하는 것처럼 행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when you’re getting kicked out of town, get out in front and pretend you’re leading a parade.) 제가 처한 상황(지미 카터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하면서, 백악관에 몸담고 있던 경력이 끝난 것)을 이용했던 거죠. 뉴욕에 있는 사모펀드와 다르게 연방정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내 자산이었습니다.
- 칼라일을 시작했던 1980년대 당시 대부분의 미국 투자 회사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이아웃, 벤처캐피탈, 부동산투자 등 여러 투자 영역에 동시에 뛰어드는 경우가 적었고(보통 한 개 전문 영역에 집중했고),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미국 밖에 투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라일은 그것을 반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바이아웃, 벤처캐피탈, 부동산투자 등 다양한 투자 펀드를 모두 조성한 다음, 그것을 칼라일이라는 브랜드에 집중시켜 자금조달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만약 칼라일의 바이아웃 펀드에 투자해 좋은 성과를 내서 만족했다면, 칼라일이 운영하는 벤처캐피탈 펀드에도 투자를 권유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지금 와서는 블랙스톤, KKR, 아폴론 등이 그 방식을 더 크고 더 잘 해내고 있지만, 그 방식(multiple disciplines, centralizing fundraising, legal, tax accounting and then I tried to globalize it.)은 제가 처음 고안한 방식이었습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내가 사모펀드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알았더라면 이런 것을 시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 회사를 세울 때 해야 할 일은, 많은 부정적인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무도 처음에는 그것이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사람들은 “만약 그것이 훌륭한 아이디어라면, 이미 누군가가 그것을 했을 테니까”라고 말하면서 그것에 대한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기 일쑤입니다.
- 나아가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자질을 꼽자면 1) 어디로 가는지 명확히 아는 것(to know where you’re going.), 2) 그것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all of life is about convincing people to do what you want),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3) 솔선수범(the most effective way is to do what you want people to do lead by example.)입니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현재 74세(1949년 출생)로 칼라일의 일상적인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케네디 센터 이사회 의장을 포함한 비영리 활동과 더 나은 국가를 위한 자선활동(patriotic philanthropy)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다음과 카카오, 그리고 네이버컴과 한게임
2000년 4월 26일, 네이버컴은 한게임을 인수했다. 네이버컴은 새롬기술로부터 250억 원을 투자받아 현금이 풍부했으나 새로운 수익모델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한게임은 수익화에 성공했지만 폭증하는 트래픽을 대응할 인프라 투자여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후발주자였던 네이버는 이후 한게임 유료화와 검색광고의 대성공으로 다음을 뛰어넘어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섰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한게임은 카카오를 설립한 김범수 의장이 만든 회사였고, 당시 한게임은 네이버컴의 1/4 수준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김 의장은 피인수 이후 한동안 공동대표를 맡다가 ‘주인공’ 역할을 이해진 의장에게 넘긴 바 있다.
2014년 5월 26일 오늘, 다음은 카카오와 합병을 발표했다. 다음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고있으나 네이버에 밀리고 있고, 카카오는 수익화에 성공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투자여력이 (라인/위챗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겠다. 정확하게 14년 1개월의 시차를 두고 닮은 꼴의 인수합병이 일어난건데. 다른 점은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가 다음의 3.5배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는 사실이다. 말이 합병이지 사실상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한 모양새다. 김 의장은 통합법인 주식의 40%를 소유하는 최대주주가 된다.
물론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네이버컴과 한게임, 그리고 대기업에 가까운 다음과 카카오의 인수합병효과는 다를 수 있다. 조직이 큰 만큼 합병 후 통합하는 과정에서의 시간이 더 걸릴테니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는 것 또한 늦어질 수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와츠앱과 네이버 라인과의 경쟁에서 쉽게 밀리지 않을 체력을 확보했다는 점은 즉시 유효하다. 한국경제 임원기 기자가 어제를 버려라에 묘사했던 승부사 기질이 다시 한 번 나온셈이랄까?
앞으로의 다음카카오, 아니, 이번엔 주인공 역할을 할 김범수 의장의 ‘다음’이 기대된다.
넥슨 김정주 회장 키노트 @ SoftBank Ventures Forum 2013
오늘 W워커힐에서 진행하는 소프트뱅크 벤처스 포럼에 오픈서베이 이야기를 하러갔다가, 평소에 뵙기 힘든 넥슨 김정주 회장이 키노트하는걸 볼 기회가 있었다. 인상적인 이야기들을 간단히 메모하면.
- 넥슨은 때를 잘 만났다. (Internet + Game + Right Time)
- 지금도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을 돌아다니며 소규모 팀으로 일하는걸 즐긴다.
-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하기도 하는데 Collective Intelligence 에 관심이 많다.
- 사람들이 Lyft, Lit Motors 와 같은 ‘미친’ 서비스들을 더 많이 개발했으면 한다.
- 게임중독보다 더 큰 문제는, 훌륭한 인재들이 게임만 개발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길게보고 해라. 10년, 20년이 지나면 옆에서 따라오던 경쟁자들이 다 자빠지기 마련이다. 그 때 남아있으면 1등 되는거다.
약간 빗겨간 이야기로 얼마 전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만났을 때 얘기를 해주셨는데. 손 회장이 “여전히 두려움에 떨면서 ‘제대로’ 베팅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외부에서 보면 야후-알리바바-보다폰-스프린트 인수가 파격 그 자체인데, 당신은 여전히 제대로 하지 않은거라 얘기하니 아무리 김정주 회장이라해도 기가 질렸을테다.
골드뱅크
국내 인터넷 사용자가 600만명이던 1999년, 골드뱅크에는 200만 가입자가 있었다. 인터넷 사용자 셋 중 한명이니 지금으로 치면 애니팡급이다. 7급 공무원이었던 김진호 대표는 회사를 창업한지 1년 반만인 1998년 10월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했고, 얼마되지 않아 시가총액은 3천억을 넘어섰다. 코스닥 진입전에는 인터넷 주식공모로 9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흥미로운건 주식공개 이후 골드뱅크의 행보가 일본 소프트뱅크와 유사했다는 것. 김대표도 공개적으로 말한적이 있는데, 다양한 금융기법으로 자금을 조달해 다른 회사에 투자하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노렸다. 실제로 연매출이 100억에 불과하던 1999년, 이 회사는 유상증자, 전환사채발행, 해외투자유치 등을 통해 1000억을 조달하고는, 심지어 타이어회사에도 투자했다. 결국 적대적 인수합병에 휘말리다가 지난 2009년 상장폐지됐는데.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리워드 모델은 사용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골드뱅크가 그러했듯 스마트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던 작년부터 모바일 광고사업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서비스 시작 이후를 보자. 김대표는 광고 클릭수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광고주들은 실질적인 매출증대를 원했다. 말하자면 이 회사는 클릭당과금(Cost Per Click)을 제시했지만 광고주들은 행동당과금(Cost Per Action)을 원한거다. 광고효과에 의문을 가진 기업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당시에는 회원수 확보라는게 하나의 사업모델이었다. 사실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러하다. 매출이 없어도 회원이 많으면 결국엔 돈이 된다고들 생각한다.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하지만 장미빛 전망이던 한국벤처들은 추락하기 시작했고, 테헤란밸리는 신기루처럼 증발하지 않았던가. Chris Dixon 도 수익모델을 검증하지 못한 소비자 서비스들은 어려워질거라고 예측했다. 멋부릴때가 아니란 말이다.
+ 소프트뱅크도 비슷한 시기에 주가가 100분의 1로 줄어들며 여려움을 겪었지만 반등에 성공했다. 차이는 무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