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스타트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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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에 핀치투줌이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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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아이폰이 출시된 2009년 늦가을, 수많은 웹 기반 회사들은 모바일을 웹의 단순한 연장이라 생각했다. 웹에서의 자산이 많던 회사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했는데, 이런 인식은 제품 담당자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앱에 더 많은 기능을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나온 앱에는 한결같이 웹사이트 콘텐츠가 거진 다 들어가 있었다.

다시 말해, 데스크톱 모니터용으로 설계된 사이트맵을 모바일 화면에 꾸겨 넣은 셈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에 있어 모바일은 웹과 완전히 다른 맥락을 갖고 있던 까닭에, 그들이 자산이라 믿던 유산(legacy)은 부채로 바뀌어버렸다.

애플의 핵심특허였던 핀치투줌

애플의 핵심특허였던 핀치투줌

한편 스마트폰의 가장 특징적인 사용법은 멀티터치다. 한 번에 하나의 입력만 인식하던 이전과 달리, 두 개 이상의 손가락을 동시에 인식함으로써 다채로운 상호작용 방법을 만들어냈고, 그중 백미는 ‘핀치투줌(Pinch-to-Zoom)’이다. 소송 중에 미국 특허청에 의해 무효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애플·삼성 특허전쟁에 있어 핵심이었던 걸 상기해보면 이 방식의 상징성을 유추할 수 있다. 즉, 애플에 핀치투줌이란 스마트폰 시대의 가장 큰 자산이었다. 꼬마 아이나 노인조차도 어떤 어려움 없이 이 방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애플워치를 공개하고 있는 팀 쿡 사장

애플워치를 공개하고 있는 팀 쿡 사장

그런데 팀 쿡 사장은 오늘 애플워치를 발표하며 “이 정도로 작은 스크린에서는 ‘핀치투줌’을 적용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pinch-to-zoom’ wouldn’t make much sense on a screen that’s so small.)”며 직전 세대의 가장 큰 성공 자산에 선을 그었다.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웨어러블을 스마트폰의 연장으로 해석하고 있을 때, 애플은 키보드 기반 맥에서 멀티터치 기반 아이폰으로 넘어갔던 것처럼 완전히 새롭게 카테고리를 정의했다. 유산 중에서 어떤 것이 자산이고 또 부채임을 명확하게 이해한 까닭이다.

그의 부채 소각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Written by Kelvin Dongho Kim

2014/09/10 at 10:57

돌이 떨어져서 석기시대가 끝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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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Q 메신저

인터넷사용자 4명중 1명이 ICQ를 썼다

얼마전 한 모임에서 모바일 패러다임에 존재하는 사업기회들을 정리해 발표한 적이 있다. 내가 잘 알아서 한게 아니라 이참에 한번 공부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자료들을 찬찬히 훑어보니 십수년 전 PC통신이 보급될 때 산업에 존재했던 기회들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해 생겨난 기회들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뚜렷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온라인과 모바일은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아닌 컨텐츠를 전달하는 ‘매체’에 불과한 까닭이다.

PC통신이 보급되던 1990년대 중반부터 크게 서너차례 왕좌가 바뀌었는데, 이는 기술도약으로 새로운 주류 매체가 도입된 시기와 맥을 같이했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존 방법론에 도전할 수 있는 ‘리셋 기회’를 만들어내고, 이 기회는 선발주자가 열심히 구축한 경제적 해자를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다. 소위말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벤처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최적기인 셈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가장 먼저 조명받는 ‘메신저’를 보자.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건 모두에게 있는 공통적인 욕구이기 까닭에, 판이 새로 깔릴때마다 많은 회사가 이걸 공략하기위해 달려든다. 1996년 출시된 세계 최초의 온라인 메신저 ICQ 는 서비스시작 3년이 채 되기전에 AOL에 $4억달러에 인수되었고, 2001년 당시 인터넷 사용자 4명 중 1명이 사용할 정도로 확산됐었다. PC통신의 보급과 함께온 기회를 잡은 셈이다. Windows 에 기본탑재되어 ICQ의 아성을 위협했던 Microsoft MSN 메신저는 네이트온 메신저에게 (한국에서의) 왕좌를 내줬는데, 이는 SK커뮤니케이션즈가 초고속통신으로의 전환기에 나타난 ‘리셋 기회’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바일의 확산과 등장한 카카오톡은 출시 2년만에 국내 최대포털 네이버를 순방문자 기준으로 넘어섰다.

Economic Moat

패러다임이 바뀌면 해자는 무의미해진다

잘나가던 기업들도 무너질 수 있다보니, 시장에 일찍 진입한 기업들은 목숨을 걸고 진입장벽을 만든다. 진입장벽의 핵심은 후발주자를 밀쳐내는 핵심이 고객과의 관계,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서버단의 알고리즘, 혹은 사용자들의 인식일 수 있다. 현실은 방금 전 언급한 세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렌버핏도 포트폴리오 회사를 정하는 기준으로 이와 유사한 개념인 ‘경제적 해자 (Economic Moats)‘를 꼽는다.

문제는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기업들이 쌓아올린 해자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는 아무리 열심히 구축한 장벽도 무의미해진다. 이런 시기에 허둥지둥대는 회사를 보면 대부분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원인이다. 가장 높은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는건 경영진의 베타적 권한이기에, 적절한 장소에 척후병을 배치하지 못한 실책인 셈이다. 20세기 후반 석유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자키 야마니의 말을 들어보자.

“석기시대가 끝난 이유는 돌이 다 떨어져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더 나은 발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 “The Stone Age didn’t end because they ran out of stones, but because someone came up with a better idea.” – Sheikh Yamani, Saudi Arabia’s previous oil minister

역사적인 패러다임 변화는 자원의 고갈 그 자체가 아니라, 범용적 자원의 불편함으로 인해 발명된 새로운 대체제에 기인한다. 아무리 단단한 돌성벽도 청동과 철에 무자르듯 해체되었고, 아무리 순도높은 구리선통신도 광통신에 자리를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2012년 현재에는 모바일을 무기로 하는 벤처기업들이 인터넷 해자를 10년간 구축해온 기업들을 매섭게 흔들고 있다. 그리고 이번 판에서는 메신저, 커뮤니티, 게임, 커머스와 같은 전통적인 정보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기존에 정보기술과의 접점이 적었던 산업들로도 전장이 확대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정보기술과의 접점이 적었던 사례로 리서치 산업을 보자. 기존에는 적당한 수의 문항들로 1,000명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아무리 싸도 기천만원을 주고도 한달 이상을 기다려야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벤처기업 아이디인큐가 개발한 오픈서베이는 모바일 앱을 이용한 응답수집과 알고리즘 기반의 신뢰도검증을 활용해 기존 업체들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결과를 전달하고 있다. 심지어 가격은 십수배 저렴하다. 20%-30% 개선된 것이 아니라 수십배 이상 개선된 속도와 비용으로 고객들의 더 나은 의사결정을 돕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와해적 혁신은 모바일 시대가 만들어낸 기회다. 다시, 돌이 떨어져서 석기시대가 끝난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