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서베이 데이 원 (OPENSURVEY Day One)
2년 전 오늘 오픈서베이가 첫 선을 보였다. 디자이너가 없었기에 홈페이지는 투박했고, 이제 막 앱스토어에 올라간 앱은 세 번 중 한 번은 멈추거나 꺼지곤 했다. 우린 용산 한 켠의 작은 오피스텔에 있었고, 집에는 일주일째 못 들어갔다. 마케팅 비용도 마땅치 않아 친구들에게 앱을 써보라고 전화를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든 서비스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진 것만으로 행복했다.
우리는 모든 기업들이 소비자 조사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기존 방식의 리서치는 전문인력 중심으로 진행됐고,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원을 고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고객들이 제한적인데다 저변은 넓어지지 않으니, 서로 있는 고객 빼앗는데 골몰하는 상황이었다. 원가구조를 혁신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을거라 직감했고. 면밀한 검토끝에, 기술에 베팅하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하는 업무 중 적지않은 부분이 기술로 대체되거나 효율이 대폭 높아질거란 계산이었다.
안그래도 보수적인 리서치 산업에, 경험이 일천한 젊은 사람들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방법론을 갖고 뛰어들었다. 다들 무모하다고 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 오픈서베이는 500여개 기업에서 사용되는 국내 1위 모바일 리서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자랑스러운건 우리 고객 스펙트럼이 현대카드와 같은 대기업에서부터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벤처회사까지 대단히 넓다는 것. 실제로 오픈서베이 고객 셋 중 하나는 리서치를 하고 싶었지만 비용부담으로 할 수 없던 회사였다. 산업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원가구조를 혁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픈서베이의 정수는 스마트폰으로 소비자 응답을 수집하는 것에 있지 않다. 수집된 데이터를 자동으로 검증하고, 시각화하며, 분석하는 알고리즘과 백엔드 시스템이 핵심이다. 시스템이 갖춰지고 고도화되면서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기존 리서치 회사에서는 연구원 한 명이 많아야 연간 20건의 프로젝트를 처리하는데, 우리는 5배 수준인 100건을 수행한다. 압도적인 차이다.
오픈서베이는 단순히 모바일 리서치가 아니다. 누구나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만들겠단 절실함이며, 리서치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되겠다는 의지다. 오늘은, 이 거대한 도전의 과정에서 데이 원 (Day One) 일 뿐이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이야기 @ SoftBank HQ
오늘 소프트뱅크 본사에서 손정의 회장을 만났다. 오래전부터 뵙고 싶었는데, 오픈서베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여러모로 중요한 시간이었고. 만난 것 자체로도 좋은 경험이지만, 발표를 준비하며 아이디인큐의 미래를 다시 한 번 점검했던 것이 큰 성과였다.
발표가 끝나고 배석한 분들과 함께 손정의 회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인상적인 부분을 메모한다.
- 나는 때를 잘 만났기때문에 이 앞자리에 앉아 발표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세대 더 늦게 태어났으면 (이 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발표하고 있었을거다. 내가 소프트뱅크를 시작했을 때에는 성공하겠다는 절실함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15년을 인터넷과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지 않았던가.
- 우리가 투자한 여러분은 이미 가족회사다. 나를 포함한 IT산업 1세대들은 이미 6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여러분 같이 젊은 세대의 창업자를 만나며) 끊임없이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파트너라고 생각해달라.
- 이동통신사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장비투자가 핵심이었다. 누가 기지국을 더 많이 세우냐가 중요한 시기였는데. 여기에 매몰되면 Dumb Pipe 로 전락해버릴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컨텐츠가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단순하게 망을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지않고 (얼마전 인수한 SuperCell 처럼) 부가가치를 더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 소프트뱅크는 Sprint와 BrightStar의 인수로 연 1억 3천만대의 휴대단말기를 구입하게 되면서 협상력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 소프트뱅크 혼자서 구매할 때와 비교했을 때 삼성전자, 애플과 같은 벤더와의 관계에 큰 전환점이 됐다.
- 여기서 (일본과 미국을 아우르는 1위 통신사업자가 된 것에) 안주할 생각은 없다. 아직까지 개척하지 못한 시장이 많다. 매출, 이익 등 모든 면에서 세계 1등 회사가 되는걸 목표로 가고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하루다.
넥슨 김정주 회장 키노트 @ SoftBank Ventures Forum 2013
오늘 W워커힐에서 진행하는 소프트뱅크 벤처스 포럼에 오픈서베이 이야기를 하러갔다가, 평소에 뵙기 힘든 넥슨 김정주 회장이 키노트하는걸 볼 기회가 있었다. 인상적인 이야기들을 간단히 메모하면.
- 넥슨은 때를 잘 만났다. (Internet + Game + Right Time)
- 지금도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을 돌아다니며 소규모 팀으로 일하는걸 즐긴다.
- 새로운 아이디어에 투자하기도 하는데 Collective Intelligence 에 관심이 많다.
- 사람들이 Lyft, Lit Motors 와 같은 ‘미친’ 서비스들을 더 많이 개발했으면 한다.
- 게임중독보다 더 큰 문제는, 훌륭한 인재들이 게임만 개발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길게보고 해라. 10년, 20년이 지나면 옆에서 따라오던 경쟁자들이 다 자빠지기 마련이다. 그 때 남아있으면 1등 되는거다.
약간 빗겨간 이야기로 얼마 전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만났을 때 얘기를 해주셨는데. 손 회장이 “여전히 두려움에 떨면서 ‘제대로’ 베팅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외부에서 보면 야후-알리바바-보다폰-스프린트 인수가 파격 그 자체인데, 당신은 여전히 제대로 하지 않은거라 얘기하니 아무리 김정주 회장이라해도 기가 질렸을테다.
풋내기를 위한 HR
얼마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읽다가 아주 마음에 드는 글이 있었다. 이른바 풋내기를 위한 HR (HR for Neophytes) 인데, 고개를 끄덕였던 아젠다 위주로 내 생각을 덧붙여 본다.
- A-Player 라는 환상 – 업무성과는 개인의 노력이 아닌 조직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개인의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돕는 주위 구성원들과 회사 내부의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라이벌 회사의 스타 플레이어를 스카우트했을 때 효과가 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사람의 성과를 뒷받침하던 지원 체계 (support network) 가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Player 보다 A-Team 이 우선이다. 또 A급 조연은 언젠가 A급 주연이 된다는걸 잊지 말자.
- 소극적인 지원자 – 좋은 스카우터는 소극적인 지원자 (passive applicants) 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게 지금 있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까닭에 이직을 공개적으로 고려하진 않지만, 먼저 다가가서 좋은 제안을 했을 때 신중하게 고려한다. 실제로 아이디인큐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경력직은 소극적인 지원자였다. 다만 논의의 시작은 소극적이어도, 인터뷰 과정에 들어가면 최소 세 차례에 걸쳐 가급적 많은 구성원들과의 적합성을 맞춰보는게 필요하다. 잘 맞는 사람인 경우 면접이 거듭될수록 서로로 하여금 함께하고픈 마음을 키워주기 마련이다. 훌륭한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기회는 (얼결에 주어진 것보다) 갈망한 결과로써 갖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레퍼런스 체크 – 작은 규모의 회사일수록 지원자들의 업무경험에 대해 세심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비용이 들어도 전문펌에 레퍼런스 체크를 아웃소싱하는 것이 좋다. 사람일은 모르는 법이라 이미 합류한 상황에서는, 알고보니 사실과 다른게 있다해도 대처하기 쉽지않고, 한다해도 (처음에 아끼려던 것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든다. 언젠가는 지원자와 면접을 두어차례 보고는, 레퍼런스 체크를 위해 이전회사 보스를 연결해달라고 하니 ‘자기를 못믿는거냐’며 화를 낸 경우도 있었는데. 당연히 함께하지 않았다.
- 업무중심 연수 – 회사는 내부 구성원의 역량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제는 적지않은 회사들이 효과적이지 못한 강의방식을 선호한다는 것. 교육을 위한 교육보다는, 업무를 배정받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방식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실재하는 도전과제를 부여하면, 업무능력 개발에 걸리는 시간이 크게 단축될뿐만 아니라 과정에서의 몰입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들의 근속연수가 길지 않아도) 회사는 높은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을 잘 활용하는 사례로는 대부분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꼽을 수 있다.
스탭들은 업무강도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티가 덜 나는 People Issue 가 할 일 목록 아래쪽에 위치하기 쉽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먼저 쓴다고 하지 않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