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스타트업 이야기

한국신용데이터, 오픈서베이, 그리고 기업가정신

네 번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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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무실은 용산 전자상가 뒤편이었다. 여느 스타트업처럼 넉넉치 못한 자금을 갖고 시작했고, 지금처럼 인큐베이터가 흔치 않았기에 여섯 평 남짓한 오피스텔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이었다. 조립가구를 사서 직접 낑낑대며 나사를 조이고 다른 회사가 쓰던 중고 서버를 샀지만,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서 서비스를 출시한 첫해 12월까지 10개월을 머물렀다.

첫 번째 사무실 (용산, 2011년 2월 - 2011년 12월)

첫 번째 사무실 (용산, 2011년 2월 – 2011년 12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용산 사무실에서는 등을 부딪치며 일하기 일쑤였다. 조금 더 넓은 두 번째 사무실을 구하는 과정에서 광화문 일대와 강남 일대를 놓고 고민했는데. 분당과 수원 쪽에서 올라오는 구성원에게는 신분당선이 있는 강남역 근처가 낫겠다 싶었고, 테헤란로가 벤처에 주는 상징성도 있기에 강남권으로 마음을 정했다. 하지만 주머니 형편이 넉넉치 못한건 마찬가지라 대로변 건물을 구할 순 없어서, 역삼초등학교 근처 주택 한 층을 빌렸다. 아래 사진처럼 거실은 개발그룹이 안방은 사업그룹이 쓰다가 5개월 만에 떠나게 됐는데. 가장 짧게 머물렀지만 가장 많이 밤을 지새운 시기여서 그런지 일 년은 있던 기분이다.

두 번째 사무실 (역삼, 2011년 12월 - 2012년 5월)

두 번째 사무실 (역삼, 2011년 12월 – 2012년 5월)

첫 번째 공개채용이 대흥행하면서, 여섯 명 남짓이던 회사가 열댓 명으로 불어났고 석 달 만에 세 번째 사무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첫 번째 기관투자를 받은 직후였던 까닭에,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된 사무실로 옮겨보자 생각했고. 십수 개의 후보를 둘러보다가 첫눈에 반한 곳이 바로 엊그제까지 사용하던 서초 사무실이다. 강남역 우성아파트 모퉁이에 있어서 채광도 좋았고 신축건물이라 산뜻한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입주할 때만 해도 공간의 절반밖에 사용하지 못했는데 2년이 흐르는 사이에 사람들이 두 배로 늘면서, 회의실 두 개 중 하나는 사무공간으로 전환해야 했다. 좀 더 큰 사무실이 필요한 시점이 온거다.

세 번째 사무실 (서초, 2012년 5월 - 2014년 6월)

세 번째 사무실 (서초, 2012년 5월 – 2014년 6월)

그리고 어제 네 번째 사무실로 이사를 마쳤다. 서비스 특성상 구성원들은 온종일 앉아있어야 하는데도, 썩 좋은 사무 가구를 제공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옮길 때에는 모두 퍼시스 가구로 바꿨더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외부미팅이 많고 활기찬 사업그룹은 입구 앞 트인 공간에 자리를 잡았고, 집중을 요구하는 업무가 많은 개발그룹은 조용하게 분리된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두 그룹 사이에 휴게공간을 마련한 까닭은 일할 때에는 각자여도 쉴 때는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단 생각 때문이다.

이번 사무실은 강남 교보빌딩 건너편 포스코 사옥에 위치해 있는데, 지하 1층에 풀무원에서 운영하는 건강한 구내식당이 있다는 것과 신논현역 2번 출구 바로 앞이어서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또 나같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걸어서 삼 분이면 교보문고에 갈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일테다.

네 번째 사무실 / 사업그룹 공간 (반포, 2014년 6월 - 현재)

네 번째 사무실 / 사업그룹 공간 (반포, 2014년 6월 – 현재)

네 번째 사무실 / 개발그룹 공간 (반포, 2014년 6월 - 현재)

네 번째 사무실 / 개발그룹 공간 (반포, 2014년 6월 – 현재)

네 번째 사무실 / 휴게 공간 (반포, 2014년 6월 - 현재)

네 번째 사무실 / 휴게 공간 (반포, 2014년 6월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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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카카오, 그리고 네이버컴과 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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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26일, 네이버컴은 한게임을 인수했다. 네이버컴은 새롬기술로부터 250억 원을 투자받아 현금이 풍부했으나 새로운 수익모델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한게임은 수익화에 성공했지만 폭증하는 트래픽을 대응할 인프라 투자여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후발주자였던 네이버는 이후 한게임 유료화와 검색광고의 대성공으로 다음을 뛰어넘어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섰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한게임은 카카오를 설립한 김범수 의장이 만든 회사였고, 당시 한게임은 네이버컴의 1/4 수준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김 의장은 피인수 이후 한동안 공동대표를 맡다가 ‘주인공’ 역할을 이해진 의장에게 넘긴 바 있다.

2014년 5월 26일 오늘, 다음은 카카오와 합병을 발표했다. 다음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고있으나 네이버에 밀리고 있고, 카카오는 수익화에 성공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투자여력이 (라인/위챗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겠다. 정확하게 14년 1개월의 시차를 두고 닮은 꼴의 인수합병이 일어난건데. 다른 점은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가 다음의 3.5배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는 사실이다. 말이 합병이지 사실상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한 모양새다. 김 의장은 통합법인 주식의 40%를 소유하는 최대주주가 된다.

물론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네이버컴과 한게임, 그리고 대기업에 가까운 다음과 카카오의 인수합병효과는 다를 수 있다. 조직이 큰 만큼 합병 후 통합하는 과정에서의 시간이 더 걸릴테니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는 것 또한 늦어질 수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와츠앱과 네이버 라인과의 경쟁에서 쉽게 밀리지 않을 체력을 확보했다는 점은 즉시 유효하다. 한국경제 임원기 기자가 어제를 버려라에 묘사했던 승부사 기질이 다시 한 번 나온셈이랄까?

앞으로의 다음카카오, 아니, 이번엔 주인공 역할을 할 김범수 의장의 ‘다음’이 기대된다.

Written by Kelvin Dongho Kim

2014/05/26 at 10:02

두 번째 연례서신에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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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벚꽃 필 무렵 첫 번째 연례서신에 덧붙여라는 글을 썼는데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재작년을 마무리하면서 이보다 더 역동적인 시간들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지난 해에는 그걸 훌쩍 뛰어넘어 때로는 탈진에 이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잘 이겨낼 수 있던건 존경하는 동료들 덕분이었으리라. 지난 3월 주주들에게 발송한 연례서신 중 일부와 못다한 이야기를 기록해 본다.

가장 높은 수준의 충성도를 갖고 있는 고객이 (Repeating Client) 같은 기간동안 2배 늘어났습니다. 이는 사업기반이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형태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실제로 2013년 4분기에 오픈서베이를 사용하고 2014년 1분기에도 한 번 이상 사용한 기업고객은 50개에 달합니다.

일반적인 시장조사의 리드타임이 연 1-2회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위에서 말한 재구매 고객은 그저 이탈하지 않은 고객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신뢰관계가 형성된 회사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오픈서베이와 함께 의사결정을 내린 고객사 열 곳 중 하나는 분기마다 우리와 함께 한다는 뜻이다. 행복한 일이다. 좋은 사람 주위에는 오래된 친구가 많은 것처럼, 회사와 고객 사이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시스템 복잡도를 극복하기 위해 연단위의 기술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이는 시스템 인프라를 분산처리가 용이한 형태로 변환하고, 보다 다양한 형식의 데이터를 수집/처리하는 기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2013년 여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2014년 하반기부터 적용되는 이 시스템은 가능한 모든 설문 형태를 완결성있게 표현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기능개발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강조했듯 오픈서베이의 핵심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백엔드 알고리즘에 있다. 그렇기에 시스템 설계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리서치 회사가 아닌 기술 회사 눈높이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불가능한 수준의 데이터를 쌓고 분석하기 위해 전체 구성원 셋 중 하나가 엔지니어다. 이러한 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더 발할 것이 분명한데, 기술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들어가는 원가요소를 ‘점진적으로 하지만 영구적으로’ 개선하는 까닭이다.

물론, 오픈서베이의 미래는 단순하게 스마트폰으로 응답을 수집하는데 국한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채널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효율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고객에게 최상의 의사결정 기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다양한 채널의 응답을 수집하는 과정 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기술을 확보하는데 큰 기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2013년 4분기에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패시브 데이터 수집과 결과분석 자동화는 아이디인큐를 오는 2014년에 플랫폼 회사로 도약하게 만드는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2013년의 우리는 국내 모바일 리서치 산업의 80%를 점유했다. 가능성을 증명하니 카피캣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는데 그 중엔 누구나 알만한 대형 IT기업도 있더라. 오픈서베이가 그들의 기준이 될만한 플랫폼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얼마 전에는 기능 이름까지 똑같이 따라한 회사가 수주경쟁에 참여한 적도 있는데, 이겨서 증명한 건 물론이다.

우리의 올 해 목표는 –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작년의 오픈서베이’를 뛰어넘는 일이다.

사선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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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전투의 양상과 사선대형의 차이

일반대형과 사선대형 차이 (빨간색이 정예전력)

전술의 기본은 내가 약하든 강하든 상대방의 약한 곳을 치는데 있다. 적은 분할하고 나는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과 나의 전력차이가 벌어질수록 이게 잘 안통한다. 우리는 이순신의 명량해전처럼 수 배 이상의 병력을 무너뜨리는 영웅담에 매료되곤 하지만, 그건 기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다. 전쟁에 이기려면 이길 싸움에 이기고 질 싸움은 피하는 것이 옳다.

그래도 어느 전투에서나 한 쪽은 열세가 되기마련인데, 기원전 371년 테베의 젊은 장군 에파미논다스와 6천여 명의 병사들이 그랬다. 스파르타의 왕 클레옴브로토스가 1만 1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테베로 진격해왔고 이들은 아테네 북서쪽의 레욱트라에서 맞붙었다.

당시 스파르타 병사들은 일반적으로 밀집된 형태의 장창 보병대의 형태로 (팔랑크스, Phalanx) 전투에 참여했는데. 횡과 종으로 12명이 늘어서 전방 전투원이 부상당하면 후방과 자리를 바꾸며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큰 특징이었다. 오른손으로 싸우고 왼손으로 방어하는 형태이다보니, 전투 중에는 자연스럽게 반시계 방향으로 전장의 구도가 회전했고. (오른손으로 공격하려면 왼발을 내딛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좌익을 무너뜨리고 적의 사령부를 타격하느냐가 승패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에 우익에 배치되는건 가장 위험하면서도 명예로운 일이었고, 때문에 이 곳에는 늘 최고의 전력이 배치되었다. 다른 말로는 중앙과 좌익은 보통 수준의 병사들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에파미논다스는 이 점을 역으로 이용했다. 스파르타 정예가 치고들어오는 좌익을 적의 4배 수준으로 (종심 50열) 강화하며 승부를 걸었고, 동시에 상대적으로 얇아진 중앙과 우익이 적군과 마주치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기위해 사선대형으로 군대를 배치했다. 좌익을 빠르게 진격시켜 열세인 구역이 전장에 끌려들어가기 전에 스파르타 사령부를 괴멸시켜 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레욱트라 전투에서 구현된 사선대형

레욱트라 전투의 흐름: 사선대형은 시간과 공간을 따로 분할함으로써 열세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형 하나만으로 이긴건 아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테베가 기병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운이 따라줬다. 패주하는 스파르타 기병이 팔랑크스에 뛰어들면서 보병 대열을 흐트렸고, 혼란상황에서 전력마저 수 배 차이났기 때문에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테베의 우익이 스파르타의 좌익이 제대로 맞부딯치기도 전에 본진의 클레옴브로토스 왕까지 타격해 전사시켰다. 스파르타 왕이 전투에서 죽은건 레오니다스 이후 백 년 만이었다. (레오니다스가 전사한 테르모필레 협곡전투는 영화 300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레욱트라 전투를 흔한 영웅담으로 취급할 수 없는 까닭은 이것이 전쟁사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이다. 사선대형은 전투에서 고려할 수 있는 전략의 차원을 재정의했다. 이전에는 공간 분할만이 유일한 각개격파 방법이었는데. 에파미논다스가 시간이라는 차원을 더했다. 만약 좌익과 중앙 그리고 우익이 동일 시점에 맞부딯쳤다면 중앙과 우익이 무너지며 좌익마저 적군에게 포위당했을테다. 하지만 사선대형은 아군에게 유리한 구역에서의 전투를 ‘먼저’ 시작하고, 불리한 구역에서의 전투는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상대방이 병력우세를 활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특정 구역에서 테베군이 우세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냈고. 그 시간은 판도를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Written by Kelvin Dongho Kim

2014/02/01 at 02:42

오픈서베이 데이 원 (OPENSURVEY Da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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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늘 오픈서베이가 첫 선을 보였다. 디자이너가 없었기에 홈페이지는 투박했고, 이제 막 앱스토어에 올라간 앱은 세 번 중 한 번은 멈추거나 꺼지곤 했다. 우린 용산 한 켠의 작은 오피스텔에 있었고, 집에는 일주일째 못 들어갔다. 마케팅 비용도 마땅치 않아 친구들에게 앱을 써보라고 전화를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든 서비스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진 것만으로 행복했다.

오픈서베이를 런칭한 날

오픈서베이를 런칭한 날 (2011년 12월 19일)

우리는 모든 기업들이 소비자 조사라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기존 방식의 리서치는 전문인력 중심으로 진행됐고, 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원을 고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고객들이 제한적인데다 저변은 넓어지지 않으니, 서로 있는 고객 빼앗는데 골몰하는 상황이었다. 원가구조를 혁신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을거라 직감했고. 면밀한 검토끝에, 기술에 베팅하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하는 업무 중 적지않은 부분이 기술로 대체되거나 효율이 대폭 높아질거란 계산이었다.

안그래도 보수적인 리서치 산업에, 경험이 일천한 젊은 사람들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방법론을 갖고 뛰어들었다. 다들 무모하다고 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지금, 오픈서베이는 500여개 기업에서 사용되는 국내 1위 모바일 리서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자랑스러운건 우리 고객 스펙트럼이 현대카드와 같은 대기업에서부터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벤처회사까지 대단히 넓다는 것. 실제로 오픈서베이 고객 셋 중 하나는 리서치를 하고 싶었지만 비용부담으로 할 수 없던 회사였다. 산업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원가구조를 혁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픈서베이의 정수는 스마트폰으로 소비자 응답을 수집하는 것에 있지 않다. 수집된 데이터를 자동으로 검증하고, 시각화하며, 분석하는 알고리즘과 백엔드 시스템이 핵심이다. 시스템이 갖춰지고 고도화되면서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기존 리서치 회사에서는 연구원 한 명이 많아야 연간 20건의 프로젝트를 처리하는데, 우리는 5배 수준인 100건을 수행한다. 압도적인 차이다.

오픈서베이는 단순히 모바일 리서치가 아니다. 누구나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만들겠단 절실함이며, 리서치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되겠다는 의지다. 오늘은, 이 거대한 도전의 과정에서 데이 원 (Day One) 일 뿐이다.

Written by Kelvin Dongho Kim

2013/12/19 at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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